스코빌 지수는 어떻게 매운맛을 숫자로 만들까?
지난 글에서 고추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고추가 전 세계에 퍼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겨요. "그래서 어떤 고추가 제일 매울까?" 이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인류는 매운맛을 숫자로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어요. 바로 스코빌 지수예요.
매운맛을 숫자로 표현한다는 발상
매운맛은 원래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이에요. 같은 고추를 먹어도 누군가는 "이 정도면 순한 편이네"라고 느끼고, 누군가는 "너무 매워서 못 먹겠다"고 느껴요.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을 어떻게 객관적인 숫자로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처음으로 체계적인 방법으로 풀어낸 사람이 바로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에요.
윌버 스코빌과 관능검사법의 탄생
1912년, 윌버 스코빌은 고추의 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어요. 이름하여 '스코빌 관능 검사(Scoville Organoleptic Test)'예요. 방법은 이랬어요. 고추 추출물을 설탕물로 계속 희석해 가면서, 여러 명의 시험단이 더 이상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시점까지 마시게 하는 거예요. 이때 몇 배로 희석해야 매운맛이 사라지는지를 기준으로 매운 정도를 수치화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고추 추출물을 물 1,000배로 희석했을 때 비로소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 고추는 스코빌 지수 1,000 단위(SHU)로 기록되는 방식이에요. 참고로 일반적인 피망은 0 SHU, 청양고추는 대략 4,000~1만 SHU,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캐롤라이나 리퍼는 무려 200만 SHU가 넘어요.
사람의 혀에 의존하던 방식의 한계
스코빌의 관능 검사법은 획기적이었지만 명백한 한계도 있었어요. 결국 사람의 혀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시험단의 컨디션이나 개인차에 따라 같은 고추라도 측정값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어요. 매운맛에 이미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희석 한계점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오차 문제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이고 정밀한 측정 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어요.
HPLC, 과학이 매운맛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
오늘날에는 사람의 혀 대신 기계로 캡사이신의 실제 함유량을 직접 측정하는 방식이 표준으로 쓰이고 있어요. 바로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라는 분석 장비예요. 이 장비는 고추 추출물 속에 캡사이신과 관련 성분이 정확히 몇 밀리그램 들어있는지를 화학적으로 분리하고 정량화해요.
이렇게 측정된 캡사이신 함량은 다시 스코빌 단위로 환산되는데, 이 방식은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일관되고 정밀한 값을 얻을 수 있어요. 다만 오랜 세월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스코빌 지수'라는 이름과 단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측정 방법만 과학적으로 발전한 셈이에요.
스코빌 지수로 보는 세계 고추 순위
스코빌 지수 덕분에 우리는 전 세계 고추의 매운 정도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됐어요. 순한 편인 피망과 파프리카는 0 SHU, 우리에게 익숙한 할라피뇨는 2,500~8,000 SHU 정도예요. 한국의 청양고추는 대략 4,000~1만 2천 SHU 사이로 할라피뇨보다 매운 편에 속해요.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가면 하바네로가 10만~35만 SHU, 그리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캐롤라이나 리퍼는 평균 160만 SHU, 최고치는 220만 SHU까지 기록된 적이 있어요. 참고로 우리 몸을 자극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최루액(페퍼 스프레이)이 대략 200만~500만 SHU 수준이라는 걸 생각하면, 캐롤라이나 리퍼가 얼마나 극단적인 매운맛인지 짐작할 수 있어요.
오늘의 정리
오늘은 매운맛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스코빌 지수의 탄생 배경과, 사람의 혀에 의존하던 초기 방식이 오늘날 HPLC라는 정밀한 화학 분석법으로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봤어요. 덕분에 우리는 이제 "이 고추가 얼마나 매운지"를 숫자로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게 됐어요.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전 세계에 퍼진 고추들 중, 나라마다 대표적으로 즐겨 먹는 매운 식재료와 소스들을 본격적으로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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